창세기 6:5/시편 51:5에서의 '완전타락'

가인과 아벨 이후, 창세기 5장은 아담의 후손들을 기록합니다. 에녹은 성경의 인물들 중 가장 장수한 Methuselah(969!)를 낳았습니다. 라멕은 노아를 낳았지요. '노아'는 안식, 휴식이라는 말로써 곧 그리스도의 예표(type)되는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3:7-19, 4장 전장을 마태복음 11:28-30과 비교하면 알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6장에서 죄가 급격히 번성함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구절에 대해서는 신학자들 가운데 놀라울 만큼의 여러 견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천사들이었으며 이들이 인간인 '사람들의 딸들'과 혼인하는 것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하는 견해가 아마 가장 유력하지요. 단군신화를 비롯한 여러 문화의 신화도 꼭 신과 인간의 결합을 구사하지요? 그 예외는 여호와하나님의 성경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당신의 고귀하심을 낮추 시사 인간 되시어 그분의 영원하신 교회, 곧 선택된 백성 (the Elect)과 하나 된다고 하심은 사실이나, 이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영적인 하나됨이지요(15:6, 17:23; 5:26, 27, 32). 창세기 6:2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께로 난, 구원받은, 주 그리스도의 세대 (generation), 혈통 (line)에 속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반대로 '사람들의 딸들'은 타락한 인간의 자손, 하나님과 사이가 나누어진 (59:2) 불신자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죄의 증가의 원인은 바로 고린도후서 6:14-18에서 금하는 성경의 가장 기본적인 청정(淸淨)한 것과 불결한 것이 분리돼야된다는 원칙을 어김 ('mixed marriages') 에서 옴을 배울 수 있습니다. 물론 영적인 가르침은 야고보서 4:4에서 설명하듯 믿는 자는 세상과 하나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을 두고 창세기 6:5절이 있습니다.

"And GOD saw that the wickedness of man was great in the earth, and that every imagination of the thoughts of his heart was only evil continually." (줄친 단어들을 공부합니다)

죄의 노예가 아니고, 자유의지 (참된 선과 악을 택할 수 있는 능력) 가 있는 인간을 과연 묘사하는 구절입니까? (6:11,12,13 과도 비교해 봐야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단어들을 풀어 보자면, '사악함' ('wickedness') 은 창세기13:13에서 Sodom의 죄를 (대표적으로 homosexuality)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며 시편 51:4에서는 다윗의 간음과 살인의 죄를 가리키는 '악한 행실' ('evil')로 번역됐습니다. (같은 단어가 6:5절의 후반에서 '악하다'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또 잠언 3:7 8:3에서는 주를 두려워하는 자는 떠나는 그것이 이 'wickedness' 라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이 'wickedness' 'earth' 'great'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earth'는 창세기 1:1에서 '하늘과 '의 ''과 같은 단어이므로 창조된 온 세상을 말하며, 'great'는 여호수아 11:4에서 '해변에 있는 모래만큼' 많은 사람의 수를 가리키는 '많다'라는 단어이지요. 그러니 이 당시에 추측하자면 한 2백만의 세계인구중 구원받은 자가 극히 드물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고 이것은 바로 노아의 방주에 겨우 여덟 사람이 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는 그 홍수를 피했다는 것에서 입증되지요.

오직 하나님이시기에 인간의 내면을 투시하시어 아실 수 있는 진리를 (고전 2:10-11) 또 그 다음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A. '모든 상상' ('every imagination') '모든'은 '완벽', '온전'하다는 말에서 온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창세기 3:17 '전 생애' ''이지요. '상상' '만들다,' '형성한다,' '토기장이'로 번역되는 말에서 왔습니다.

B. '생각' ('thoughts')은 이사야 55:7, 8(x2), 9(x2)에서 볼 수 있듯이 목적/계획이라는 단어지요?

C. '악할 뿐임'에서 '뿐임' ('only')은 민12:2에서 '모세를 통해서만' ''이고요.

D. '계속해서' ('continually') 'every day'와 같으며 문맥상에서의 기간을 나타냅니다.

엮어 본다면, 창세기 6장의 인간들의 계획/생각은 빈틈없이, 완벽/온전히 동성애, 간음, 또 살인을 능가하는 악함만을 형성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사악함의 근원은 그 '마음' ('heart') 이었다고 말씀하십니다(17:9; 12:34, 35, 15:16-20). 몇 백만의 인간 중 여덟을 제외하고는 악인이었다고 해도 "fiction이다" 라고 할텐데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상상이 계속해서 악할임을 보시고....'는 충격 아닙니까? 완전타락 (전적 무능력)- 성서적 진리입니다.

시편51:5를 볼까요?

"Behold, I was shapen in iniquity; and in sin did my mother conceive me."

이 구절을 정확히 공부하려면 우선 hermeneutics를 잠시 논해야겠습니다. Hosea, Ruth, Proverbs 31의 영적인 의미에 대하여 논한 적이 있습니다. 성경은 대체적으로 3 levels의 의미를 담고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hermeneutics에 관한 책자, "1st Principles of Bible Study" Family Radio website GoodMessage에서 출력할 수 있습니다). 1st levelHistorical, 2ndMoral, 3rdGospel/Salvation입니다. 룻기를 볼 때, 룻을 모든 선택된 자들로 구성된, 영원한 교회 (eternal, 또는 invisible, church - Rev. 3:12, 21:2)라고 보는 것은 3rd level이고, 2nd level a) 남녀관계, b) 신명기 25장에 비춘 kinsman redeemer의 의무와 권한, 그리고 c) 룻의 시어머니에 대한 충성심과 그에 따른 축복이라고 할 수 있겠으며, 1st level은 룻이 이방 모압 여인이었으며, 그 당시 기근이 있었고, 보아스와 룻이 다윗왕, 또 궁극적으로 주 그리스도의 육의 조상들이었다는 것이겠습니다. 3rd level은 성경 어디에도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유일한 예외는 복음이 드러나 논해지는, 예로 잘 알려진 요한복음 3:16같은 구절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표면에 나타난 이상으로 그 참 의미와 논리적인, 내포된 의미는 그러한 구절일지라도 상당히 깊은 것은 사실입니다). 참된 성경공부는 바로 Gospel, 또는 Salvation Account (구속사), 3rd level (Gospel of Salvation이라고 할 수 있음)을 구하는데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신학자들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성경공부는 2nd level에서 멈추지요. 예수님의 비유들에 대해서조차도 2nd level에서 만의 (비유의 1st level은 기록된 만큼은 정확하다는 사실 이외에는 없으므로) 해석과 가르침이 숱하지요. 우선 hermeneutics에 관한 것은 여기서 그만 합니다.

"Behold, I was shapen in iniquity; and in sin did my mother conceive me."

우선 중요한 것은 어머니가 나를 배는 그 자체가 죄라는 것이 아닌 것이지요. 타락한 인간, 죄악의 환경이 나의 출처임을 가르치고 있는 말씀입니다.

A. '태어났다' '지었다'라고도 신명기 32:18과 욥기 15:7에서 번역됩니다. '지음'이 더욱 정확하다면 전에 언급한 시편 139:13-16의 의미와 비슷하겠습니다.

B. '죄악' ('iniquity')은 같은 51 2, 9절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죄악'은 자비와 진리로, 곧 그리스도의 구원으로 정결케 된다고 잠언 16:6은 말씀합니다. 또 이사야서 53:5, 6, 11은 주 그리스도께서 이것으로 인하여 '상함'받으셨으며, 아버지께서 그분께 지우시고 담당하도록 하신 것이 바로 그 백성의 'iniquity'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 위에서 봤듯이 이사야서 59:2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사이를 나누게 한 것이 이 ''('iniquity')라고 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것은 죄의 책임, 'guilt'와 죄인이기에 부끄러움, 'shame'을 말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C. 후반의 ''('sin')는 이사야서 1:18 '주홍' 같다는 그것입니다. 성경에서 주홍은 언제나 피 흘림, 생명을 잃음, 다시 말해서 '죽음'을 말합니다 (17:11, 14; 9:22). 이 죽음 가운데 있는 인간의 처참함을 에스겔 16:6은 말씀하지요. 이점은 시편51 14절 역시 입증합니다.

51 6절과 요한복음 9:2, 34절의 '소경으로 태어난 것' ('born blind')/'전적으로 죄들 가운데 태어나서' ('altogether born in sins')를 현 구절과 비교할 때 인간의 모든 것은 썩어있으며 어느 한 순간에도 타락해있지 않은 적이 없었다는 깊은 진리를 배우게 됩니다. 이것은 2nd level interpretation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3rd level이 있습니다. 이 시편의 주인공은 다윗입니다. 다윗은 목동이자 또 이스라엘의 왕이 된, 말하자면 Shepherd-King이지요. 그런데 이 다윗과의 언약들 중 하나님께서 여러 번 반복하시는 점이 다윗의 보좌를 '영원케' ('forever') 한다는 놀라운 것입니다 (삼하7:13; 9:7, ). 이것은 historical level에서는 해석이 불가능한 약속입니다. 우선 다윗이 통치하던 이스라엘은 그의 아들 솔로몬의 죽음이후 이스라엘과 유다, 두 왕국으로 갈라집니다. 계속되는 하나님을 향한 반항으로 Israel Judah 100여년 앞서 ( B.C. 709경에) 앗수르인들에게 전멸 당합니다. (Judah B.C. 587 Babylon에 의해서)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 역시 성전을 포함하여 A.D. 70에 로마황제 Titus에 의해서 파괴되지요. 다윗의 문자 그대로의 보좌는 보존되지 않았습니다. 또 베드로후서 3장은 현존의 만물은 불타 없어질 것을 가르칩니다(7-13).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은 오직 3rd level에서 완벽히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곧 사도행전 13:36, 37이 대조하듯 다윗은 죽어 잠들었으나 주 그리스도께서는 썩어짐을 경험하지 않으신 것을, 바로 '다윗의 확실한 자비를' 받으신 분되심을 (34) 깨달을 때에 하나님께서 '영원케' 하신다는 보좌는 바로 주 그리스도의 보좌인 것이다라는 (1:32-33; 1:21-23; 1:8) 올바른 해석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면에서 볼 때에 이 구절은 곧 주 그리스도의 외침인 것입니다.

더욱 복잡한 내용은 우선은 피하도록 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계시록12장에서의 출산하려하는 여인을 볼 수 있습니다. 룻이 그렇고, 잠언 31 '현숙한 여인'도 역시 그렇듯이, 계시록 12장의 여인은 '주님의 몸,' 즉 교회를 예표합니다(7). 4절은 사탄인 '붉은 용'이 여인의 아이를 ('사내 아이', 5) 삼키려 서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 오셨을 때를 묘사하는 것입니다. 붉은 용이 여인의 출산을 기다리듯 Herod을 통해 사탄은 주님의 살인을 계획했었지요. ( 2:1-16). [* 8:44가 가르치듯 사탄은 처음부터 살인자였으며, 오늘날도 사탄은 자식은 개인의 생활에 '지장'이며 '불편'한 것이라는 현혹으로 abortion이라는 무서운 죄를 통하여 거룩한 씨앗의 번식을 막으려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속죄 그 자체는 Gethsemane에서 시작되었으나 시편 51:5와 이사야 53:3을 비교할 때 주님은 아마도 인간이 죄 가운데서 태어나듯, 그분의 백성의 죄를 지고 이 세상에 오셨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겠습니다.

Task ONE

HOME